by: 관리자  2011-11-04
예수님의 눈물 : 누가 19:28-48
누가 19:4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셔서 그 도시를 바라보시고 눈물을 흘리렸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한번도 사람이 타보지 않는 어린 나귀를 타시고 사람들의 환호성과 찬양을 받으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환호의 박수가 며칠 되지 않아 조롱과 저주의 함성이 될 것을 아시면서도 예수님은 겸손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뜻을 향해 나아 가십니다.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신 주님은 그 도시를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사랑이 예수님을 울게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의 소중함이 예수님 마음에 다가왔고, 그 사람들의 완악함이 예수님의 마음을 때렸습니다. 성전을 장사하는 도굴로 만들어버린 지도자들의 강팍함을 슬퍼하셨습니다.

서울을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땅... 먼저 서울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2010년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서울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울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예수님의 눈물이 내 눈에 가득한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 드림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목사가 되기를 원하고, 가족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아빠가 되기를 원하고,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예수님의 사람이 되기를 헌신합니다.

그 눈물을 흘리는 서울 드림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수아 목사
by: 관리자  2011-11-04
차차하다가 아차차한다" 여호수아 목사님 설교중에서..(눅19:1-10)
(눅19:5-6)예수님께서 그 곳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고 삭개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

삭개오가 빨리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이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삭개오를 통해서 우리는 회개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삭개오의 회개는 말씀에 속히 순종하는 회개였습니다. 즉 회개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또한 단번에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일 예배 여호수아 목사님의 말씀처럼 회개는 차차하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설교 중 재미난 예화가 생각나네요. 지옥에 간 사람들이 하는 말 “차차하다가 아차차 한다” ㅋㅋ 우스운 말이지만 생각해보면 이보다 진리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삭개오의 회개가 바로 단번에 하는 회개였던 것입니다.

삭개오의 회개는 주님의 말씀을 즐거이 행하는 회개였습니다. 즉 죄 회개로 끝나지 않고 기쁨으로 하나님의 뜻에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삭개오의 회개는 주님이 관심 갖고 계신 곳에 자신도 관심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서야 할 곳은 주님의 마음이 머문 곳이어야 합니다.

삭개오의 회개는 자신의 잘못을 갚는 일이었습니다. 즉 남에게 피해 주며 살았다면 이제는 남은 여생 몇 배로 갚음의 삶이 되어야 진정한 회개인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받은 사람의 모습이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감동케하는 드림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어느 수준의 회개에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죄인 삭개오가 회개한 것처럼 속히 회개하고 다시는 범죄하지 않겠다고 결심해 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하기로 결단합니다. 주님의 관심에 마음을 둘 것입니다. 그리고 일생 갚음의 삶을 실천하는 사랑하는 드림인이 될 것입니다.

김대현 목사
by: 관리자  2011-11-04
소경을 막는 사람들 (눅18:31-43)
"앞서 가던 사람들이 그를 엄히 꾸짖으며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욱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제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39절)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실 때 보지 못하는 사람이 구걸하고 있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서 나사렛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외친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제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 외침을 듣고 주변의 사람들의 반응이 이 본문에 나온다.

그 소경의 부르짖는 소리가 커졌던 같다. 오직 외침에 의해서만 자기 의사를 나타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 크게 외쳤을 것이다. 예수님 옆에 있던 사람들이 꾸짖는다. "조용히 하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냥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엄히' 꾸짖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서 그 정도가 강하고 심했던 것 같다. "당신같은 사람이 소리지를 자리가 아니라"고 말했을 지도 모르겠다. 질책하는 느낌, 꾸짖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내 마음에 다가온 것은 "앞서가는 사람들"이 그를 "엄히 꾸짖으며"라는 표현들이었다. 꾸짖는 그들도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가까이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열심이 있었고 간절함이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들이 목마르고, 주님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한 사람을 막은 것이다. 가난하고 보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수 없다는 편견때문이다. 그렇게 시끄럽고 미련하게 주님을 부르는 것은 왠지 경우에 맞지 않는 것이다는 생각이 있었을 지도모르겠다.

나는 어떤가? 나름대로 주님을 찾느라고 혹 다른 사람을 향해서 무례한 사람은 아닌가? 자신의 생각에 갇혀서 다른 사람의 목마름이나 가난함을 무지함이라고 치우치게 바라보고 있지는 않는가? 주님을 보라.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가까이 부르신다. 그리고 그의 믿음에 답하신다. 조금도 무례하지 않고, 조금도 치우치지 않는 분이다. 그 분이 내가 주님이라고 부르는 분이시다.

(기도) 사랑하는 나의 주님! 때때로 나의 무례함에 내가 놀라곤 합니다. 나의 한계를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향해서 쉽게 판단하곤 하기도 합니다. 주님을 생각하면 이렇게 편안한데, 나는 다른 사람에게 그렇지 못합니다. 저를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주님의 제한 없는 사랑과 은혜안에 저도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도배
by: 관리자  2011-11-04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눅18:15-30)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17절)

주님은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귀히 여기신다.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
먼저 어린아이들은 계산적이지 않고 복잡하지 않다. 세상을 알아가면서 배우는 것이 세상 사는 방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복잡하고 계산이 많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단순하고 깨끗하다. 또한 어린아이일수록 부모에게 의존적이다. 갖난 아이들이 어머니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편안한가? 얼마나 안정적인가? 조금의 근심이나 두려움도 없다. 그 품에 안겨서 쉬고 먹는다. 그것이 어린 아이의 모습이다. 이런 모습은 마치 주님안에서 안식하라는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은 작은 일에도 즐거워한다. 어린아이일 수록 웃는 횟수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처 그 횟수가 줄어든다고 한다. 모든 일에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이다.

나는 어떤가?
내 신앙은 계산적이고 복잡하지 않은가? 기뻐할 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닌가? 주님 안에서 안식하고 있는가?

(기도) 사랑하는 주님! 한 해를 시작하는 첫 날에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묵상해봅니다. 주님, 계산적이지 않고 단순하고 싶습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기쁨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참된 쉼이란 오직 주님 품안에서 누리는 것임을 확인하는 하루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 천국을 누리고 경험하는 삶이 되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도배
by: 관리자  2011-11-04
주님! 낮아지게 하시옵소서 (눅18:1-14)
눅18:11 바리새파 사람이 서서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저는 다른 사람 즉 사기꾼, 죄인, 간음을 행하는 자와 같지 않고 이 세리와 같지 않은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며 모든 수입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한편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말했다. ‘하나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나 자신을 돌아봅니다. 내게 바리새파 사람의 모습이 가득하지 않은지요? 내 안에 행위와 율법으로 구원받고자 하는 모습이 있지 않은지요?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들으며 많은 훈련과정들을 통해서, 주님의 기쁨이 무엇이고,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나누고 배웁니다. 새벽기도도 하고, 때를 따라 금식도 하며, 정성껏 십일조도 드립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우리의 자랑이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믿음 없음을 판단하는 우리들의 기준이 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세리처럼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죄를 자백하며 주의 자비를 구할 때, 주님은 칭찬하시고 의롭다 하시고 하늘나라의 높은 자리에 세우십니다.

렘29:12 너희가 내 이름을 부르고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의 기도를 들어주겠다. 13 너희가 온전한 마음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날 것이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온전한 마음은 ‘하나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는 자신의 죄를 자백하며 낮아지는 마음일 것입니다.

‘주님! 주님 가르쳐주신 진리가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기준이 되지 않게 하시옵소서. 낮은 데로 임하신 주님을 기억하며 낮아지게 하시옵소서.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게 하시옵소서. 아멘’

김동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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