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관리자 2011-11-10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행 4:13-22)
아내를 처음 만났던 때는 1991년 가을이었습니다.
한때 유행했던 노래의 한 소절처럼 "십월의 마지막 밤"에 첫 데이트를 가졌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떨렸던지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여자 친구가 생기고 얼마나 친구들에게 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무슨 대화를 하던지 그 화두를 저의 새로운 애인에 대한 이야기로 돌리면서 자랑을 늘어 놓았습니다. 그때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신학교 친구들... 모두가 싱글이었는데...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랑하고 열정이 있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침묵할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의 공회원들 앞에서 담대히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이미 그들 앞에 일어난 기적을 보면서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적당히 회유하고 위협해서 돌려보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은지 아님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옳은지 오히려 반문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20절)
그렇습니다.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고 참을 수 없는 것이 믿음이요, 성령이 충만한 증거입니다.
그냥 침묵할 수 없도록 속에서 차고 넘쳐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세상을 향해 침묵하지 않는 믿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편안하고 비겁한 침묵을 선택하기보다는 담대히 은혜를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기를 겸손히 주께 간구합니다.
여호수아 목사
by: 관리자 2011-11-10
오직예수 (행 4:1-12)
성전 앞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가 걷게 된 일은은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서 일어난 기적을 보면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마음을 오히려 강팍하게 하고 사도들을 감옥에 가두고 심문합니다. 무슨 권세로 그런 일을 했느냐고 몰아 부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령이 충만해져서 담대하게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와 부활에 대해 설교합니다.
4:12 예수님 외에는 다른 어떤 이에게서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 우리가 구원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갈릴리 촌 출신의 어부들의 입에서 터져나온 이야기는 가장 권세있는 선포였습니다.
오직 예수...
얼마나 많은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의 그 "오직 예수"의 비밀을 깨닫고 하나님의 나라에 헌신을 했는지 모릅니다.
다른 진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다른 구원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른 주는 우리에게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우리의 길이 되시며, 진리가 되시며, 생명이 되십니다.
오직 예수...
그 이름만을 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라고,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함께 외칩시다... "오직 예수!"
기도: 하나님, 예수... 그 이름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주소서. 그 이름의 권세를 우리에게 부어주소서. 그 이름을 높이는 신앙이 되게 하소서.
여호수아 목사
by: 관리자 2011-11-10
하나님의 설득(행3:17-26)
그러므로 여러분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의 죄는 씻음받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때가 올 것입니다. 또 주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미리 정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보내 주실 것입니다.(19-20절)
사람들의 무지로 인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인간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시기 위한 의도된 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이 사실을 미리 알리셨고 결국 자신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깊은 의도를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하였고 한 가지 중요한 문제에 대해 강조합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지함으로 인해 죄를 범하였지만, 하나님은 다시 기억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제시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그냥 하나님의 뜻에 설득당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이고 신앙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앙의 기준은 아버지의 뜻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잘 살지 못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곤 합니다.
믿음의 공동체는 아버지의 뜻을 알고 섬기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말하고 있는 드림셀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합니다.
드림셀에서 우리는 이 일들을 경험할 것입니다.
내가 아닌 아버지의 뜻과 기준이 삶의 기준으로 삼고 누리는 모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가슴에 품은 자가 바로 리더들로 세워지길 기도합니다.
함께 기도할 때에 아버지의 뜻이 우리에게 명확하게 보여질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할때 아름다운 인생이 될 것입니다..
하성진 목사
by: 관리자 2011-11-10
믿음의 도전(행3:11-16)
15.마침내 여러분은 생명의 주님을 죽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16.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믿음 때문에, 여러분이 보고 아는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보시다시피 예수님의 이름과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 이 사람이 완전한 치료를 받은 것입니다.
오늘 주일예배 김여호수아 목사님 설교 중에 에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에마는 여호수아 목사님의 친구목사님이신 에디목사님의 딸입니다.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있다가 결국 지난 주에 하늘나라로 돌아 간 아기입니다.
여호수아 목사님은 에마의 위로예배에 가서 놀라운 도전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에마의 아버지인 에디목사님이 위로예배에 참석한 성도님들에게 인사말씀을 하기 위해 나오셔서 하신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저를 위로하지 마시고 내일 에마의 하관예배가 있을 때까지 24시간만 기도해 주십시오! 저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에마를 살리실 수 있는 분임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실 수 있는 분임을 확실히 믿습니다! 믿음은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24시간동안 믿음으로 기도해 주십시오!”
이것이 에디목사님의 말씀이셨다고 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에디목사님의 말씀이 터무니없는 말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여호수아목사님의 마음에 믿음으로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날 에마의 하관예배를 가시면서 여호수아목사님의 마음에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에마를 살리실 수 있는 분이라는 확신이 강하게 밀려왔다는 고백을 듣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 목사님의 사모님과 자녀들도 동일한 믿음으로 상황을 지켜보았습니다. 에마의 장례식은 하관예배와 함께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어떤 결과를 기대하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믿음의 기도를 들으셔서 죽은 자를 살리셨다”라는 기적을 기대하셨습니까? 사실 그랬다면 정말 세상이 뒤집힐 정도의 대단한 이슈가 되었겠지요. 하지만 에디목사님의 믿음의 고백을 듣고 함께 기도한 믿음의 동역자들은 아무도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그들 마음가운데 주님은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이 뿌리 박혀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책 속에 가둬버린 하나님의 전능하심..부활의 사건을 신학적으로 믿는다고 고백하고 잘 설명할 수 있지만 실제의 나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던 기적의 사건들..,
하지만 에디목사님의 믿음의 선포를 들으며 베드로 사도의 선포가 진리이며 허구가 아닌 완벽한 사실임을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믿음이 내 마음에도 들어와 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김대현 목사
by: 관리자 2011-11-10
칭찬받는 드림人 (행2:37-47)
37.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렸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38.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회개하고 여러분은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며,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47.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였으며, 모든 사람에게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늘어나게 하셨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마음의 찔림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도 잊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나 때문에 채찍에 맞으셨고 가시면류관을 쓰셨으며 손과 발에 못 박혀 십자가에 달리신 은혜를 당연한 듯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나에게 새로운 삶을 허락하시고 영생을 주신 기적과 같은 일에 아무런 반응 없이 감동 없는 모습이 되어버렸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증거했을 때 그것을 듣고 마음이 찔렸던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물었던 질문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나의 질문이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했던 회개가 소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회개는 성령을 선물로 받는 회개였습니다. 성령충만함으로 주님의 동행하심을 경험하고 공동체가 하나됨을 이루게 되는 첫걸음입니다. 가족, 직장, 내가 속한 공동체가 성령충만한 나로 말미암아 하나되고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선한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기록된 말씀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받을 것이고 그 모습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감동케하는 예수공동체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실천될 때 이 세상에는 주님을 만나고 구원받는 드림人들이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김대현 목사